5화, 휘라강
새로 나타난 적은 일격에 아즈치성의 중심부를 분쇄했다. 그 충격은 노부나가를 비롯해 가신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휘라강을 빼앗아 유유히 자리를 떠나려 하는 이 적은 무사 월드 전역을 모조리 파괴하고 말 것이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비틀거리면서도 일어선 노부나가를 눈치채고 적이 돌아본다.
다음 순간, 가차 없는 일격이 노부나가를 덮쳤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
노부나가의 의식은 거기서 끊어졌다.
패도.
무예로 세상을 다스리는 힘. 궁기와의 싸움에서 많은 동료와 마음을 나눈 이후에도 이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패도에 뜻을 둔 것은 이전에 아직 얼간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질서도, 궤도도 없이 그저 날뛰기만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노부나가는 어느 날, 동료의 배신으로 산적에게 둘러싸여 목숨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렇게 찾아온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어느 인물이 나타나 노부나가를 구한다.
노부나가는 후에 그자가 무사 건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부나가와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사 월드에서 이미 전설이 된 존재. 압도적으로 강한 그를 직접 마주한 노부나가는 제 안에서 커다란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후 그는 오롯이 무예를 갈고닦는 데 힘쓰며,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지식과 교양을 쌓았다
'왜 지금 그런 일이 떠오르는 것인가'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되지 않는 사고 속에서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그렇다. 아즈치성에서 상대한 오보로 무장이 제게 보여준 모습은 바로 무사 건담이었다.
가짜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모습은 노부나가의 가슴속 불꽃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잠들어 있던 휘라강이 빛나기 시작했다.
적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휘라강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내가 제대로 이용당했구나.“
얼마 후, 노부나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즈치성 근처의 산림. 자신 외에도 주변에는 부상당한 병사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사스케와 사이조의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자는 눈을 의심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대는...... 무사 건담......!"
노부나가를 구한 것은 78대 무사 건담, 그리고 그의 맹우인 은밀 건담 에어리얼이었다.
틀림없다. 진짜 무사 건담과의 재회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상대.
북받치는 마음으로 노부나가는 감사 인사를 했으나,
"흠. 그런 일이 있었던가?"
힘이 풀린 노부나가의 상처가 탁 벌어진다.
"큭......!"
은밀의 말에 따르면 78대는 사소한 일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고, 하룻밤이 지나면 기억하지 않는 것이 신조라고 한다. 그게 뭐야?
정말로 누구보다 강하다는 그 무사 건담이 맞나?
갭이 너무 큰 탓에 또 상처가 터질 것만 같다.
아니, 자세히 보니 상처도 박스 테이프로 감아놨을 뿐이다. 아주 대충대충이다.
애초에 지난 궁기와의 싸움에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어째서란 말인가.
"아니~ 그게...... 한숨 자고 난 뒤에 갈 생각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완전히 끝나 있었지 뭔가."
태평하게 말하는 78대를 보며 노부나가의 사고는 같은 곳을 맴돈다.
정말, 정말로 이 남자가 무사 월드의 전설적인 존재인가?
아니, 그건 분명할 것이다.
붕괴한 아즈치성에서 노부나가뿐 아니라 모두를 구해냈다.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는 아무리 넓은 무사 월드라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떨어진 박스 테이프를 순식간에 다시 붙이는 은밀의 산뜻한 솜씨를 보니, 78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 노부나가였으나, 지금은 어쨌든 싸움터로 돌아가야 한다.
다친 상태로 전장으로 돌아가려는 노부나가에게 78대가 말했다.
"조급하게 굴면 뭐든 잘되지 않는다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나아간다고? 패도의 끝에 다다른 이 노부나가에게 더 이상 나아가야 할 길은 없다."
노부나가가 돌아왔을 때, 아즈치성은 거의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상공에 조용히 멈춰 있는 새로운 적의 모습.
지금까지 오보로 무장들이 벌인 거듭된 습격의 주모자임이 틀림없다.
"정체가 무엇이냐?"
노부나가의 질문에 상대가 대답한다.
"이름 따위 없다...... 하지만 너희의 말을 빌린다면...... 오보로 마장."
그 몸에는 휘라강이 장착되어 수상한 빛을 내뿜고 있다.
"마장? 무사 월드에 전해지는 휘라강의 힘을 마력이라 하는 것인가?"
오보로 마장. 노부나가는 그 이름에서 파괴, 살육, 정복과 같은 사악한 사념을 느꼈다.
놈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날아오른 노부나가가 달려들지만,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받아치는 오보로 마장.
천하무쌍 철강포로 날린 혼신의 일격조차 오보로 마장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다음 순간, 보이지 않는 일격이 내리꽂혔고 노부나가는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일어나야 해......!
하지만 그 몸에 받은 충격이 커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패도의 끝까지 다다랐다며 자만했으나 어차피 자신은 휘라강의 힘을 발동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적의 의도를 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아니, 아마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노부나가의 머리 위로 오보로 마장의 최후의 일격이 내리꽂힌다.
그때.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노부나가 아저씨!"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오공의 돌격기가 오보로 마장의 몸에 직격한다.
그 충격은 오보로 마장의 손목을 비틀었고, 충격으로 공격이 약간 어긋나면서 노부나가에게 피할 틈을 주었다.
공중의 오공을 본 노부나가는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방식으로 싸우는 오공이 있었다.
여의봉으로 지면을 부수고, 튀어 오른 파편을 발판 삼아 공중에서 이동하며 오보로 마장에게 연이어 공격을 퍼붓는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오공과, 놀라울 만큼 진화한 그 능력.
그렇다. 오공은 성장하고 있었다. 어제보다도, 몇 시간 전보다도......!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것인가."
그 말에 약함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 나아갈 길을 얻은 것에 대한 북받치는 기쁨이 엿보였다.
그 순간, 오보로 마장이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발버둥 치듯 몸을 떨자, 장착했던 휘라강이 튕기듯이 벗겨진다.
휘라강은 크게 호를 그리며 날아와 노부나가의 몸에 장착되었다.
지금까지 보이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선명한 빛을 발하는 휘라강.
산림에 드러누운 78대의 옆에서 은밀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안 가도 되는가? 78대."
"음, 이제 괜찮을 테지."
78대, 그리고 은밀이 장착한 장비가 무언가에 반응하듯 선명하게 빛난다.
그것을 보며 78대가 말한다.
"휘라강, 무사 월드에 전해지는 옛 비보. 전란의 시대에 무지갯빛을 발하며 세상을 구한다고 하지."
휘라강을 잃은 오보로 마장이 꿈틀거리며 그 몸을 거대하게 키우기 시작한다.
정확하게는 분신체였던 오보로 무장들이 몰려들며 융합하는 것이다.
"커졌다고 우쭐대지 마!"
"기다려라, 꼬맹이."
"괜찮다니까! 여기는 내가......"
돌격하려는 오공을 막은 노부나가가 말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놈은 다음 일격으로 막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한다, 네 기술과 나의 힘을."
"기술과...... 힘......"
오공의 눈이 노부나가를 바라본다.
그런 둘에게 거대해진 오보로 마장이 바위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노부나가가 비행 형태로 폼 체인지를 하자 동시에 오공이 뛰어 올라탄다.
그리고 오보로 마장의 주먹을 피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크게 선회한다.
"가자, 오공!"
"좋아! 아저씨!"
제천대성의 모습으로 여의봉을 쥔 오공의 몸을 노부나가의 휘라강이 내뿜는 빛이 감싼다.
이윽고 그것은 하나의 빛의 화살이 되었다.
숲 안에서 보고 있던 사스케가 중얼거린다.
"노부나가 님께서 저런 방식으로 싸우시다니......?!"
동료를 활용하여 싸운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노부나가가 있었다.
오보로 마장의 몸을 꿰뚫는 순간, 노부나가의 안에 뜨거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나의 패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오보로 마장과의 싸움은 종결되었다.
킹덤 월드에 오공을 데려다주고, 제갈량 일행에게 보고를 마친 노부나가가 군마에 올라탄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옆쪽의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참지 못하고 사스케가 따라온 것이 틀림없다.
뭐, 이번에는 용서해 주도록 하지.
세상은 넓고, 아직 나아갈 길도 있다.
발을 내디디면 끝없는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어쩔 수 없군."
뛰는 가슴으로 노부나가는 말을 몰았다.
(끝)